2009년 11월 01일
정말로, 모두가 평온했으면 좋겠다.

"어디 떠나시나 봐요?"
"아뇨. 생활이 엉망이라……."
다이어리, 반짇고리, 집게, 연습장, 그리고 자명종 시계. 몇만 원이 순식간에 지출되었다. 나는 궁색한 답변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점원은 초라한 내 행색을 훑어보며 빙그레 웃는다. 평소 같았으면 기분 나빴을지도 모른다. 도리어 점원의 미소는 나에게 힘내라고 응원하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노란 은행잎이 잔뜩 깔렸었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은행잎을 다 떨궈 놓았다. 어제는, 그리고 어젯밤에는 정말로 비가 내렸다.
길을 걸으며 평생 잊기 어려울 어젯밤을 회상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술병에 머리가 깨지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주 당연한 말씀을 조곤조곤하셨고, 아주 당연하기에 한참이나 잊고 있었던 것들이 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술을 들이켰고, 속을 뒤집을 듯 토해내고, 다시 술을 들이켰다.
아침은 사우나에서 맞았고, 내 머리는 깨어질 듯 아팠다. 대충 씻고 식사를 마치자 핸드폰이 울렸다. 댓 걸음에 챙겨입고 밖으로 나섰다.
잔인하게 보냈던 가을의 끝자락에서 따뜻한 겨울을 맞는다. 어리석었다. 무척 어리석었다. 그렇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급하게 일어서지는 않으리라. 좀 더 조용히, 천천히, 따뜻하게 일어설 생각이다.
말갛게 떠오른 마음이 나를 감싼다. 그 마음을 빌어, 예전까지는 전혀 하지 않았던 생각을 한다. 정말로, 모두가 평온했으면 좋겠다.
# by | 2009/11/01 18:19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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