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7일
하늘이 열리다 - 3
해가 미칠듯이 올랐다. 일주일째 내린 비는 하늘을 뻥 뚫어 놓았고, 그 자리에 더위가 자리 잡는다. 지하철 플랫홈에는 북적이는 사람들이 빚어낸 열기가 가득 찼다.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얼마 전, 휴가에서 느꼈던 여유는 생활로 돌아오자 한 순간에 박살났고, 김부장은 한창 바쁠 때 휴가를 보낸 나를 스믈스믈 갈궈댔다. 입사 동기인 박대리는 내일부터 휴가라는데, 박대리는 그 성격 만큼이나 한창 더울 때 잘도 도망다닌다. 장마철에 휴가를 보낸 나는 마냥 억울했다. 나는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해변을 거닐고 해수욕과 함께 맥주를 마시면 그게 여름휴가라고 생각한다. 나의 올해 여름 휴가는 여유 이외의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여유만 있었을 뿐이고, 여유는 오로지 장마비에서 왔다. 집에 틀어박혀 못봤던 영화며 드라마며 버라이어티 따위를 신나게 봤지만, 쉬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같이 휴가를 보낼 애인도, 친구도, 가족도 마땅찮지만 1년에 단 한 번있는 여름휴가 아닌가. 나는 소요산행 전철이 도착하자마자 도망치듯 올라 탄다.
"배건 이배건이라도 도와주세여! 장애가 있씁니다!"
걸걸하다 못해 꿱꿱울리는 구걸인이 휠체어를 타고 전철통로를 지난다. 모두 찡그린 표정으로 휠체어를 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말 오전 전철이다. 이 전철에 오른 사람의 반수는 어디론가 놀러갈 것이고, 그 시작부터 휠체어에 치이는 경험은 누구도 하고싶어 하지 않을게 분명하다. 구걸인의 목소리는 정말로 꿱꿱 올렸다. 신경질적으로 목소리를 낸 뒤, 만만해 보이는 이의 앞에서 멈춘다. 그는 손에 구걸통을 들고 내민 뒤 두어번 흔들었다. 목소리도 신경질적인데, 그 손짓마저 신경질적이다. 그는 어떤 커플 앞에 멈춰 구걸통을 신나게 흔들었다. 자비를 구한다기보다 가진 것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여자 쪽은 남자와 약간 상의한 뒤 천원짜리 한 장을 마지 못해 구걸통에 넣는다. 구걸인은 겨우 이것 뿐이냐는 표정으로 구걸통을 회수한다. 커플은 곤혹스럽게 무엇인가 속닥인다. 구걸인은 다시 사람을 헤치고 휠체어를 몬다. 사람들은 여전히 찡그린 표정이다.
그가 내 앞으로 왔을즈음, 그의 구걸통은 나를 향했다. 그는 기계적으로 아까의 행동을 반복한다. 신경질적인 손짓에 내 기분은 바닥을 치달았다. 나는 그의 눈을 응시한다. 그의 눈은 김부장, 박대리를 닮았다. 나는 구걸통에 가만히 손등을 대고, 옆으로 치워냈다. 그 몇 초간, 나는 그의 손등을 내려쳐 구걸통을 엎어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끝까지 억누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는 꿱꿱 대는 목소리로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더니 나를 지나쳤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저주가 담겼으리라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저주. 나를 향한 저주.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향하는 저주. 나는 그 모두를 고이 받아 넘겼다.
나는 역곡에서 내렸고, 그 구걸인은 두어칸 뒤에 내렸다. 그는 주변을 살피더니 서서 돈을 센다. 뻥 뚫린 하늘은 더위를 몰고 나를 미치게 한다.
# by | 2009/07/27 03:00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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