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8일
당위
당위를 부르짖는 일은 무척 쉽다. 요컨대, 이는 우리 옆집 꼬마의 "콩사탕이 싫어요." 따위의 문장과도 비슷하다. 당위는 무척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무척 당연하기에 당위를 들어야 하는 이들에게 무척 옅게 받아들여진다. 운동을 포기한 이들, 세상 얼개가 잘못 짜여있기에 세상을 바꿔야한다고 생각만 하는 이들, 삶에 치여 아무 것도 못하지만 공부는 적당히 하여 뭐가 문제인지 감은 잡고 있는 이들에게 당위란, 단지 불편한 진실이거나 자위의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당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차라리 꼴마초 허지웅은 당위의 이름 앞에 순결한 좌파가 아닐지라도 자신의 입과 글을 통해 무엇인가 성과를 내고 있다. 군복을 입고 담배를 비스듬히 물은 그는 꼴마초일지 모르지만 한 명의 꼴마초 치고는 지금의 체제에 충분한 흠집을 낸다. 진중권은? 그는 디워 사태때 그의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ㅋㅋㅋ. 바보들."
나는 당위가 무엇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위와 결합된 어떤 형태의 행동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최근 좌파의 당위성을 부르짖는 숱한 글들을 보았고, 그 글들이 도리어 좌파들을 고립시킨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이 좌파를 비판할 때, 좌파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당위 따위를 말할 것인가?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도덕적 순결이 외부로 지나치게 표출될 때, 보통 사람들은 단지 너나 그렇게 살라고, 먹고 살기 바쁘다고 말할 것이다.
당위는 필요하지만, 강조될 이유는 없다. 당연하기 때문이다.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당위와 결합된 행동과 실력이다.
postscript. 실력은 단지 학식의 정도를 말하지는 않는다. 체제에 흠집을 낼 수 있는 그 모든 돌출행동-강의석의 누드 퍼포먼스와 같은-을 포함한다.
# by | 2008/11/18 00:48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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