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27일
집회 후기.
강력하게 구성된 지휘부가 시위를 이끌고 있다. 이전처럼 쉽게 깨어지지는 않을 듯 하다. 10시 즈음에 문화제를 끝내고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시위대의 가두행진은 종각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경들에 의해 끊겼고, 이즈음해서 난 접고 돌아가기로 했다. 내가 있었던 11시 40분경까지 시위대는 대충 1만 5천에서 2만정도 되어 보였다.
"좀 식으셨네요. 예전같으면 여기서 접지 않으셨을텐데."
같이 갔던 언론사 후배가 말했다. 그랬다. 난 분명히 식어있었다. 종각에서 가두행진이 멈추었을 때 막차시간이 지나고 주변의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갈 무렵 즈음 진압이 시작될거라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싸울 수 있었지만 싸우지 않았다. 집에서 안락하게 이 포스팅을 작성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민들은 거리에서 피흘리고 있을 것이다. 또 다시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운동을 하자고 맹세했었다. 난 울고있는 친구를 껴안고 우리가 선택한 길은 무의미하지 않다고 그렇게도 말했었다. 내가 지금 이 시간에 포스팅을 작성하는 치졸한 이유이다.
ps. 진중권 교수는 이틀 밤을 꼬박 뜬 눈으로 보내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위대 속에서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다. 2003년만 해도 진중권 교수는 그저 멋부리기 좋아하는 '자유주의' 교수로 인식되고 있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다.
"좀 식으셨네요. 예전같으면 여기서 접지 않으셨을텐데."
같이 갔던 언론사 후배가 말했다. 그랬다. 난 분명히 식어있었다. 종각에서 가두행진이 멈추었을 때 막차시간이 지나고 주변의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갈 무렵 즈음 진압이 시작될거라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싸울 수 있었지만 싸우지 않았다. 집에서 안락하게 이 포스팅을 작성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민들은 거리에서 피흘리고 있을 것이다. 또 다시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운동을 하자고 맹세했었다. 난 울고있는 친구를 껴안고 우리가 선택한 길은 무의미하지 않다고 그렇게도 말했었다. 내가 지금 이 시간에 포스팅을 작성하는 치졸한 이유이다.
ps. 진중권 교수는 이틀 밤을 꼬박 뜬 눈으로 보내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위대 속에서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다. 2003년만 해도 진중권 교수는 그저 멋부리기 좋아하는 '자유주의' 교수로 인식되고 있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다.
# by | 2008/05/27 01:50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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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열 앞에 있으면 선동 세력.
대열 속에 있으면 핵심 세력.
대열 뒤에 있으면 배후 세력.
전 그럼 머임?